머리말
분단 이후 남과 북은 언어 문제에 대한 몇 차례의 학술 교류를 가졌지만 그 성과가 그리 높지 못하였고 근래에는 이러한 활동도 대부분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겨레말큰사전》 편찬에는 양측의 학자들이 계속해서 참여해 왔으므로 이 사업은 민족어의 총화를 찾고 그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신뢰’의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남북이 함께 언어를 발전시켜 나가는일은 서로를 사회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남의 한국어와 북의 조선어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이지만, 지역과 체제의 차이로 얼마간 다른 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남북 사이에 차이 나는 부분들이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단계적이고 발전적으로 통합된다면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민족어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이 함께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 해외의 언어 자료를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우리 사업회는, 언어 ‘자료’는 물론이고 그 자료를 다루는 ‘방법’과 민족어 발전에 대한 ‘관점’을 착실히 다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몸에 익힌 ‘연구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남북의 용어와 표현, 어휘 의미, 표기 등을 소개하는 책자를 차례대로 선보이고자 합니다.
특히 이 책은 남북에서 차이나는 중요한 낱말과 표현들을 정리하여 남북 사전의 뜻풀이, 용례, 그림, 사진 등의 자료를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서로의 말과 삶, 사회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언어적 경험의 일상화는 무지나 상상으로 생기는 오해를 바로잡아 건설적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데 그와 같은 일에 이 책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같음과 다름에 대한 이해를 발판 삼아 하나 됨에 대한 희망을 함께 키워 나갔으면 합니다.
남북 정상이 2018년 세 차례의 만남을 가졌고 사회 각 부문의 교류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가운데 언어와 관련된 일화들이 몇 가지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남북 아이스하키 용어집〉을 만들어 호흡을 맞추었고, 올림픽에 앞서 가졌던 남북 당국자들 사이의 만남에서는 ‘오징어’와 ‘낙지’의 언어적 차이에 대한 짤막한 화제가 긴장된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합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는 남과 북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두 사회를 이어 주는 ‘언어의 끈’을 튼튼히 하는 일에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이제 남북 관계의 획기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상호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이즈음, 평화와 공존의 밑바탕이 되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언어문화적 측면에서의 지원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려 합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여기에 이 책을 내놓으면서 언어 통합의 마중물로서의 역할에 매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2019. 4.
겨레말큰사전공동편찬위원회 남측편찬위원장 홍 종 선